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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명칭 한성은행 표석 사진엽서
국적/시대 광복이후
재질 기타
용도기능 우편
소장기관 조흥금융
유물번호 952002

상세설명

952-002 1. 명칭 : 한성은행 표석 사진엽서 2. 이명칭 : 없음 3. 제작일 : 1997년 4. 제작처 : 조흥은행 5. 기타 : 한성은행 표석 사진 1997년 조흥은행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발행한 기념 사진엽서이다. 우표가 붙어있지 않은 일반 우편엽서이며, 뒷면에는 한성은행 표석의 사진이 도안으로 되어 있고, 전면에는 사진의 설명이 인쇄되어 있고, 실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란으로 비워져 있다. 한성은행이 1911년 발간한 한성은행 연혁개람에는 경성 중부 광교 북천변에서 우리은행이 처음 영업을 했다는 기록이 있고 창립광고문에서도 중서 광동방 전교환소에서 영업을 시작했다고 쓰여져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정확하게 한성은행의 첫 영업소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고 몇가지 참고자료를 더 살펴보면 한성은행의 첫영업소를 추정할 수 있다 고천회에서 발행한 해동지와 경성부사가 바로 그것인데 거기에는 大광교 북쪽 서입에 전교환소(錢交換所)가 있었다는 기록이 나와있다. 이런 기록들을 종합해 볼 때 한성은행은 광교 북천변, 그러니까 지금의 영풍빌딩 자리에서 첫 영업을 시작했고 광통교 북편 서쪽 입구에 있던 전교환소가 바로 한성은행의 첫 영업소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단지 평식 한옥이었다는 것만 전해 내려오는 한성은행의 첫 영업소는 우리나라 근대 금융기관의 첫 발상지로 평가받아 마땅하다는 점에서 은행에서는 이와 관련된 자료 발굴에 많은 애를 써오고 있다. 아쉽게도 100년 전 한성은행의 첫 영업지인 영풍빌딩 자리를 담고 있는 사진이 전해 내려오지 않는 이유는 전옥서, 즉 지금의 감옥이 바로 그 뒤에 있었기 때문에 사진 촬영이 근본적으로 어려웠던 것이 아닌가 추측을 할 뿐이다. 어쨌든 한성은행은 1903년, 공립 한성은행으로 개편하면서 안국방 소안동, 지금의 종로경찰서 건너편 자리(안국동)로 이사하고 영업을 했으며 그 당시 영업소의 모습은 방 두개에 마루방이 있는 20평 짜리 기와집으로 ㄱ자형 한옥이었다고 한다. 서쪽방은 은행장실로 사용되었고 좌총무와 우총무, 그리고 행원은 동쪽방을 사용했으며 마루방은 손님들이 대기하는 객장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소안동 영업소가 주택지에 위치하고 협소한 관계로 어려움을 겪자 1905년 12월 10일, 남서 다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자리는 일제시대 때에는 '평화까페'가 있었고 60년대에는 유명한 '풍년제과'가 그 자리에 있었는데 지금은 관광공사의 오른쪽 날개가 되어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1912년 자본금이 3백만원으로 대폭 늘어난 한성 은행은 본점 영업소를 다동에서 지금의 자리로 신축하면서 이전했다. 중국인 건축가의 설계로 착공한지 1년 4개월 만에 완공된 우리은행 본점 건물은 당시 장안의 명물로 대접을 받을 만큼 외관이 수려하고 웅장했다. 이렇게 해서 약 10년 만에 광통교 부근으로 돌아온 한성은행은 그 이후 줄곳 광통교와 청계천의 청계수를 벗하면서 100년의 역사를 이어왔고 지금의 조흥은행도 그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1891년 11월 고종실록에는 고종임금께서 광통교 북천변 서입에 설립된 교환서에 회관을 임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부터 광교지역은 우리나라 금융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장소로 자리를 잡아가게 된다. 바로 이 자리에 은행을 설립하려고 1896년 6월 16일 정부 고위 관리들이 모여 의논을 하게되고, 마침내 1897년 2월 한성은행이 이곳에서 첫 영업소를 열게 되었던 것이다. 조선말 국가금융 기관이었던 교환서가 광통교 북천변에 있었고 그 자리에 최초의 근대은행인 한성은행이 설립되었으며, 그 이후에는 조선은행과 지금의 우리은행인 대한천일은행도 우리은행 현 본점 건너편인 광교지역에서 문을 열었다. 이밖에도 1906년 (구)한일은행이, 1919년 해동은행이 가각 이곳에서 설립되어 이곳은 금융사적인 측면에서 유서깊은 장소가 되었다. 우리나라 근대금융 100년의 역사를 이어온 이 곳은 지금도 우리나라의 중요한 금융 중심지로 그 명성을 이어 나가고 있다. 조흥은행은 이러한 유서깊은 곳에 100년전 이땅에 근대금융제도를 수립하려 했던 선각자들의 노력과 민족은행 설립 의미를 되새기고자 표석을 설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