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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명칭 식산적금증서(봉투)
국적/시대 일제강점
재질 기타
용도기능 기타
소장기관 조흥금융
유물번호 950007

상세설명

비 봉투의 앞면에는 조선저축은행의 마크와 식산적금증서가 기재되어 있다. 그리고 좌우에는 사람의 이름과 주식회사 조선저축은행이 기재되어 있다. 아래에는 넘버와 적금 기입날짜가 기재되어 있다. 뒷면에는 사용시 주의해야할 점을 기재하고 있다. <조선저축은행(朝鮮貯蓄銀行) - 현재 제일은행(第一銀行)> 현 제일은행은 일제하였던 1929년 7월 1일 『조선저축은행』이란 이름으로 창립되었다.당시 조선식산은행(현 한국산업은행 전신)이 담당하던 저축예금업무을 승계하여 국내 최초의 저축예금 전담 특수은행으로 설립된 것이다. 설립초기 조선식산은행과 대리점계약을 맺고 이를 통해 영업을 하던 조선저축은행은 1931년 10월 2일 첫 지점으로 부산지점 및 동지점 부산진출장소를 설치하였다. 이후 지점망을 점차 확대하여 1935년 말에는 본점과 4개지점 1개 출장소, 55개 대리점의 영업망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1935년 말에는 우리나라 초유의 네오바로크식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구 본점 건물 (1989년 5월 25일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71호 로 지정)을 완공하고 이후 1987년 10월까지 52년간 본점으로 사용하였다. 설립초기 조선식산은행과 대리점계약을 맺고 이를 통해 영업을 하던 조선저축은행은 1931년 10 월 2일 첫 지점으로 부산지점 및 동지점 부산진출장소를 설치하였다. 이후 지점망을 점차 확대하여 1935년 말에는 본점과 4개지점 1개 출장소, 55개 대리점의 영업망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1935년 말에는 우리나라 초유의 네오바로크식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구 본점 건물 (1989년 5 월 25일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71호 로 지정)을 완공하고 이후 1987년 10월까지 52년간 본점으로 사용하였다. 1958년 주식회사 제일은행으로 행명변경을 하고, 이때를 하나의 전환점으로 하여 사무의 기계화 및 경영의 합리화, 신종 예금의 개발 등을 적극 추진하였다. 1958년 8월 우리나라 기업 최초로 업무제안제도를 실시하였으며, 예금회계기의 도입(1959년 3월), 텔레타이프기 설치(1959년 5월), 자기앞수표 발행기 사용(1960년 7월) 등이 국내은행 최초로 이루어졌다. 또한 경영합리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1960년 고려대학교 기업경영연구소에 의뢰하여 국내 최초로 경영전반에 걸쳐 기업진단을 받았다. 1959년 1월 1일부터 실시한 행운부저축예금, 1960년 10월 1일부터 실시한 Net Service 예금, 뒤이어 이자월불식 정기예금, 적립식정기예금 등의 신종예금을 창안 실시함으로써 고객에 대한 서비스 향상은 물론 업적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켰다. 또한 일제시대에 우리은행이 독자적으로 취급하다 1953년 통화개혁을 계기로 신규취급이 중지되었던 정기적금업무를 정부에 요청하여 1960년 2월 1일부터 재개함으로써 오늘날 저축성 예금의 대종을 이루는 주요한 저축수단으로 자리잡게 하였다. 이 기간중 외국환업무 취급문제가 논의되어 1959년 2월 무역금융업무만을 전담하는 무역 금융부를 승격 신설하는 등 외국환업무 수용태세도 갖추었다.